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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ook

[돌체] 고담: 안개 낀 밤, 달빛

 

 

돌체

고담: 안개 낀 밤, 달빛 1-2(완)

2015년 5월 31일 발행

국판 1권 301p, 2권 300p

등장인물: 색명 사반, 각단 아신

 

 

 

 

<줄거리>

 

  옛 짐승이 쓰러지며 특별한 신들이 태어나 각자의 세상을 만들었다. 그 중 몸체 하나에 머리가 둘인 기(麒)와 린(麟) 신이 있었다.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음(陰)의 신인 린은 스스로의 목을 잘라 하나의 왕과 네 명의 제후를 탄생시켜 나라를 지키게 하였으나 혼자 남은 양(陽)의 신인 기는 타락하여 큰 가뭄을 몰고 오는 악신이 되었다. 린에게서 태어난 왕은 세상의 멸망을 막기 위해 기를 성산에 봉인하고 이를 지키며 네 명의 제후는 지역을 나누어 다스리며 세상을 위해 희생하는 왕을 받들어 모신다.

  이 세계에서 태어난 이들 중에는 기린에게서 신묘한 힘을 이어받은 성통과 그렇지 못한 속통이 존재한다. 성통은 기처럼 뿔이 있거나 린처럼 색색의 포도문을 가지게 되는데, 뿔을 가진 이는 아이를 잉태하게 할 수 있으며 포도문을 가진 이는 아이를 잉태할 수 있다. 이들 성통의 아이들은 높은 확률로 부모와 같은 특징과 특별한 힘을 가지게 되는데, 가끔 뿔도 포도문도 없는 아이가 태어나기도 한다. 이들에게는 어떠한 능력도, 생식능력도 없었던 터라 자연히 속통이라 불리게 된다.

  네 제후의 가문인 사대 공가 중 하나인 색명 백가의 후계자로 태어나 백부의 지도자가 될 예정이었던 사반은 성통으로 각정하지 않자 부모와 가문으로부터 냉정하게 버려진다. 그 후 동생이 성통으로 태어나자 다른 사대 공가인 묵부로 옮겨져 묵부 대공자 아신의 말벗으로 자란다. 성통이 되지 못한 강한 열등감과 부모와 백부로부터 버려진 상처로 인해 뛰어난 성통인 아신을 그 누구보다 아끼면서도 질투하고 열등감을 느낀다. 스스로 노력하여 뛰어난 능력을 지니나 성통을 넘지 못한다는 생각에 괴로워한다. 반면 아신은 자폐아처럼 세상에 눈과 귀와 입을 닫고 살다가 사반으로 인해 깨어난 이후 사반에게 맹목적인 애정을 보인다.

  이들은 모종의 음모를 꾸미는 사반의 아버지 백공으로 인해 험난한 과정을 거쳐 서로에 대한 진실을 마주하게 되고 각자의 상처를 이겨내고 함께 손을 잡고 살아가기 시작한다.

 

 

돌체님의 특별한 세상 시리즈 중 하나. <그림자, 달, 숲>은 물론 <농중조>도 재미있게 봤던 터라 어느 정도는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읽으면서 굉장히 작은 세계라는 생각을 했다. 마치 청동기 시대에 사는 사람이 신석기 때의 설화를 듣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작고 신화적인 느낌이었는데 등장인물들의 성이 옛스러워서 더욱 그랬고, 그래서 매우 독특했다. 거의 현대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그림자, 달, 숲>과 비교해도 매우 작고 신기한 세상으로 느껴졌으니까.

 

주인수인 색명 사반의 성격이 참 좋았다. 강렬한 열등감과 질투심에 시달리면서도 자기 비하에 매몰되지 않고 스스로 노력하여 청소년 수련 집단인 문무도의 부지도자인 월씨지주에 오르고(사실 지도자감이었는데 속통인 탓에 능력없는 성통이 지도자가 되고 사반은 부지도자가 된 것) 비뚤어진 시선으로 시니컬한 말을 주저없이 내뱉으면서도 타인에 대한 연민을 갖고 있는 사반이 강하고 굳건해 보여 좋았다. 염세적인 성격과 아신에 대한 애정과 맹렬한 질투를 여과없이 드러내는 점도. 뭔가 아슬아슬하고 비틀려 있는데도 매력적이었다.  

 

각단 아신도 먼치킨 급이면서도 비틀린 성격과 자신에 대한 부당하고 부정적인 반응에 즉시 복수(?)하고 냉정, 비정하게 사태를 대하는 모습이 진짜 좋았다. 사반에게 절절매며 아이같이 매달리는 면도 귀여웠고. 가끔 당하기만 하거나, 자신의 특별한 위치 때문에 책임감을 느껴 부당한 대우를 참거나 용서하는 주인공들이 있는데, 정말 삶은 계란 10개를 1분안에 우겨넣은 것처럼 답답하다. 왜 정의로운 사람은 참고 용서하기만 하는가! 통쾌한 복수도 좀 해달라고! 아신의 멋졌던 점은, 살려달라 구해달라 애원하는 사람들에게 '다 니탓이지. 너희들이 그런 결과를 만들었으니 너희들이 책임져.'라고 so cool 하게 말한다는 점이었다. (여기서 cool은 멋지다는 의미가 아니다. 차갑고 냉정하다는 것이다.) 짧은 이야기라 그런 부분들이 많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세상의 멸망마저 '그러라지.' 하는 아신의 태도가 흡족했다.

 

이 이야기의 특이성은 아기나히 의식을 통해 자손을 얻는다는 점에서 정점을 이룬다. 그 부분을 읽을 때까지 성통끼리만 아이를 낳는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남자끼리라도 성통은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부부가 아이를 낳는게 아니라 아기나히 의식을 통해 아이를 얻고 그렇게 번식해 가는 세계라는 설정을 뒤늦게 깨닫고 큰 충격을 받았다. 굉장히 작은 세계라는 생각은 그 부분을 읽을 때 떠올랐다. 이 방법으로는 도저히 세계가 확대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보였다. 결혼과 관계로 자손을 낳을 수 있는 성골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그 차별이 납득이 될 정도였다.

 

한편으로는 아기나히 의식을 통해 번식하다보면 사람들 대부분이 장애인이어야 하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글을 읽는 도중에 정식으로 의식을 치르지 않고 편법을 쓰는 사람들이 나왔다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성골이 차고 넘치는 것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기나히 의식을 치러야 했을테고, 다들 편법을 쓰진 않았을테니(가난하거나 평범한 사람들이 그런 편법을 쓰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어느 정도는 장애인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 부러 글로 남기지 않았다고 하면 몰라도. 뭐 중요한 부분은 아니지만.

 

"신적 능력자의 애타는 갈구". "세상보다 너". 문득 CLAMP의 세계관이 떠올랐다. 그들의 만화에서는 언제나 세계보다 "너"가 중요하며 "너"를 위해서라면 세상따위 망해도 좋아 였으니까. 오랜만에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외전이 나왔는데, 불행하게도 내게 외전은 없어서 읽지 못했다. ㅜㅜ(외전 예약 종료 즈음 구매를 하는 바람에 외전 예약을 놓쳤다.) 원래 짝권은 안 읽는데.... 외전이니까 엄밀히 말하면 짝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읽었다가 외전이 읽고 싶어졌다. 꼭 외전도 구해서 읽어야겠다.

 

 

사족 1.

나름 사반을 예뻐한 듯 한 묵공이, 사반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구박받는 모습이 안습. ㅜㅜ 그래, 원래 그렇게 오해가 쌓이는 법이지. 성격 탓에 변명도 못하고... 뭐, 잘못은 했으니 조용히 감당하는 묵공의 모습이 귀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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