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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ook

[알버트] 제녀작




지은이: 알버트

제목: 제녀작(帝女雀) 上, 下

발행일: 2017. 4. 11

판형: 페이지: 국판 306, 312

등장인물: 태문공(太文公), 반자운(潘子運)






<줄거리>

  

  반신(半神)의 황제가 다스리는 나라 화서국의 개국공신이자, 황제의 천문관 집안으로 개국 황제의 명에 따라 화서국 끄트머리 위주현에서 천문을 살피며 1년의 일정을 결정하는 충신 반씨 가문에 '이 아이는 바다를 메울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으니, 사내아이면 황제를 죽일 것이고, 계집아이면 황제를 살릴 것이다' 라는 예언을 가진 남자아이가 태어난다. 예언 때문에 부모는 남녀 쌍둥이가 태어난 것으로 속이고, 아이에게 반자운, 반우여 2개의 이름을 주고 남/여 1인 2역을 하며 살아가도록 철저히 지도한다. 

  개국황제의 명을 잊은 현 황제는 위주현의 신나무를 베어오라 명하고 자신의 세 아들을 직접 보낸다. 이때 후궁의 소생으로 황후와 태자의 견제를 받아 목숨이 위험해 바보인 척 살아가던 12살의 둘째 황자 태문공과 4살 우여가(여장한 자운) 신나무의 이끌림에 의해 첫 만남을 갖게 된다. 

  몇년 후, 신나무가 베어진 탓에 관살의 별이 뜬 날, 연수라는 귀고신(괴물)이 나타나 의주현은 쑥대밭이 되고, 연수에게 공격당하는 아버지를 지키고자 막아서는 우여를 본 연수는 내년에 다시 올테니 우여를 신부로 내놓으라 하고 돌아간다. 이에 아버지 반강량은 황제에게 도움을 청하고자 하고, 부상당한 아버지를 대신하여 자운이 서신을 가지고 황제가 사는 북릉으로 간다. 

  북릉의 황제 주변은 부정부패가 들끓어 망조가 들어 있었으며 아버지가 들려보낸 뇌물로 반년을 공들이고서도 황제는 커녕 내시감에게조차 문전박대를 당한 자운은 태자를 만나고 그가 반신의 핏줄이 맞는지 회의를 느낀다. 태자는 귀고신의 존재를 믿지 못하고 황제의 충신인 반씨가문을 비웃으며 바보노릇을 하고 있는 둘째 문공을 보내겠다 서신을 써준다.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태문공에게 간 자운은 태자의 첩자로 의심한 태문공의 수하에게 독을 당해 죽어가면서도 절박하게 도움을 청하고, 문공은 그런 자운의 절박함을 믿어 군대를 이끌고 의주현으로 향한다. 

  첫 만남을 기억하지 못하는 자운과 기억하되 여자아이로 기억하는 문공. 그들은 계속 끌림을 느끼고, 우여를 만나 감정의 흔들림을 겪는 문공은 자운이 우여인 줄 모르고, 태자를 치는데 우여를 이용할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의 운명은 다시 한 번 비극을 향해 굴러간다.

 

 

  마치 동양고전 설화를 읽는 것 같은 기분이다. 지혜의 신 헌원과 그의 딸 여와의 전설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신선과 선승과 요괴들이 등장하되, 이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태반인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정말로 동양 설화를 읽는 기분이 든다. 

  데뷔작 <다이아몬드 신디케이트>에 이어 두 번째 책이신데, 정말 탄탄한 세계관과 신화적인 인물들의 구성, 그리고 설화 같은 이야기 풀이가 정말 대단하다. 알버트님이 어렸을 때부터 구상해 온 화서국 이야기의 가장 아끼는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구성한 이야기라고 하셨는데, 오랜 세월 동안 다듬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깊이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 철저하게 남자와 여자의 이중적인 삶을 살아야 했던 자운의 고뇌와 혼란, 그로 인한 문공과의 엇갈림이 잉태한 비극적 사랑, 결정적으로 남존여비가 강한 동양의 세계에서, 남녀의 삶을 직접 경험한 자운의 삶으로 인하여 진정한 페미니즘, 여성의 존재를 인정하고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는 과정까지 나아간다는 점이다. 단순히 길을 열어줌이 아니라 여와의 죽음으로 분노한 헌원의 저주가, 누구도 알아채지 못하는 가운데 지독한 남녀차별의 시발이 되고, 자운의 경험을 바탕으로한 깨달음과 헌원의 용서, 그리고 여황제의 등극으로 인하여 진정한 남녀동등의 시대로 나아간다는 점이다. 진심으로 작가님께 감탄했던 부분이다. 

  그래서 이 책은 BL이라기 보다는 동양고전설화 배경으로 분류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 자운의 전생이나 후반부 진행을 보면 남자냐 여자냐는 중요하지 않게 느껴진다. 오히려 자운이 남자였기 때문에 남녀차별의 핵심을 꿰뚫어보고 해결을 제안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또한 북릉의 부패한 정치판을 직접 목격하고 반신같지 않아보이는 태자를 만나본 자운이, 아무리 문치라 불려도 황자인 문공에게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장면이 또 좋았다. 인과관계가 명징하고 표현이나 문장이 냉철하고 깔끔해서 자운의 성격을 여실히 드러내 보였다는 점, 비판의 과정에서도 반씨 가문의 충성은 그대로 인정하는 점도 좋았다. 

  

  자운과 문공의 사랑이 비극적으로 흐르는 것은, 한 번도 자신의 사랑을 외면한 적이 없는 자운과 다르게, 자운과 우여를 놓고 고민하고 우여를 이용하기로 결심한 문공의 탓이었다. 후반에 전생을 기억하는 자와 기억하지 못하는 자를 중점으로 두고 이야기하지만, 사랑이 비틀리는 시작점에서 자운 역시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억보다는 사람 자체가 문제라고 보여진다. 기억은, 그 사랑을 더욱 비극적으로 만들었고. 그래서 자운에게 더욱 비애를 느끼게 되고 눈물을 쏟지 않을 수 없었다. ㅠㅠ  문공이 뒤늦게 잘못을 깨닫고 반 미쳐가는 과정도 업보라고 생각이 들면서도 안타까워 눈물이 났다. 자운이 불쌍해서...(문공말고)


  문공은 흔히 볼 수 있는 성격의 주인공이라면 자운은 그래서 좀 더 특별했다. 휘파람을 불면 제비가 날아온다는 특징인 연교燕咬라는 별명도 그렇고, 자신의 사랑이 배신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후회하지 않고, 상처받지 않고, 사랑 그대로를 인정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여자로서의 삶을 살면서도 비관하는 것이 아니라 남여의 삶을 비교하고 이치를 깨달아가며, 운명에 순응하려 노력하지만 울컥 치밀어 올라오는 것을 홀로 삭이고 티내지 않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발걸음도 조용조용 걷고 감정을 크게 티내지 않는 귀인의 기품을 가지고 있다'는 작가님의 표현이 정말 잘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읽고 나서는 물론, 읽으면서도 여운이 깊은 책이었다.  해끝신, 신나무, 삼상 등 동양설화적인 용어들도 정말 좋았고 염라군과 연수등 귀고신, 귀모의 등장 등 시작부터 끝까지 줄줄이 쉴틈 없이 나오는 동양설화의 이야기보따리 같은 느낌이 정말 정말 좋았다. 이런 이야기를 풀어내주신 알버트님께 정말 감사를 드리고 싶을 정도. 이런 책들이 더 많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정말로.

  


사족1. 

  상권과 하권의 한자 제목 글씨체가 다른데, 그것도 정말 좋다. 둘다 정말 잘 어울리기도 하고, 여러 설화들이 결국은 하나의 이야기로 귀결지어진다는 점에서도, 다른 듯 같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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